나는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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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그림을 완성한 후 미켈란젤로(당시87세)가
스케치북 한 쪽에 적은 글이다. “Ancora imparo (안코라 임파로)”
이태리어로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우리의 모든 시간은 정지됐다. 그리고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만나더라도 일단 경계부터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팥빙수를 겁 없이 떠먹던 날이 그립고,
가슴을 끌어안고 우정을 나누던 날이 또다시 올 수 있을까...
한숨이 깊어진다.
비로소 나는 배웠다.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한다.
속히 일상의 기적과 함께 기적의 주인공으로 사는 일상을 달라고.
나는 배웠다.
마스크를 써 본 뒤에야 지난날의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그래서 침묵을 배웠다.
너무나 쉽게 말했다.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도 쉽게 조언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다.
나는 배웠다.
‘살아있는 침묵’을 스스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몰락을 통해서만
‘죽음으로 침묵’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인도, 성직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대구로 달려간 신혼 1년 차 간호 천사가 가슴을 울렸다.
잠들 곳이 없어 장례식장에서 잠든다는 겁 없는 그들의 이야기에
한없이 부끄러웠고, 따뜻한 더치커피를 캔에 담아 전달하는
손길들을 보며 살맛 나는 세상을 느꼈다. 이마에 깊이 팬 고글
자국 위에 밴드를 붙이며 싱긋 웃는 웃음이 희망 백신이었다.
나는 배웠다.
작은 돌쩌귀가 문을 움직이듯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저들의
살아있는 행동인 것을.
나는 배웠다.
죽음이 영원히 3인칭일 수만은 없다는 것과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배웠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생물의 침투에 너무도 쉽게 쓰러질
수 있는 존재임을...
인간이 쌓은 거대한 도성도 바벨탑 무너지듯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악다구니를 퍼붓고 살았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를 배웠다.
나는 배웠다.
인생의 허들 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임을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재정의하고 살아남아 영웅이 될지,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닥친 불행과
시련을 운명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그때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배웠다.
카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북아프리카의 항구 오랑은 서로를
향한 불신과 배척,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그게 바로 아비규환의
지옥 현장이었던 것임을.
나는 배웠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고 무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 유지도 대충, 생도 대충..
이번 사태에도 너무 안이했다.
나는 배워야 한다.
아파도 웃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게 진정한 인간
승리임을.
나는 기도한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Ancora imp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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