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의 기적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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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주기도의 기적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1984(1989년이 아니라 1984년??)년 제가 군종신부 시절의 일입니다.
대위로 임관해서 간 그 부대는 군종병도, 후원회도 없는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때 월급이 18~9만원이었는데 월급이 생기면 가장 먼저 성모님 상본과 쇠로 만든
묵주반지를 많이 샀습니다. 훈련소에서 훈련이 끝나는 날, 쇠 묵주반지를 천주교 신자
들 군번줄에다 매어주었어요. 손에 낀 반지를 보면 고참들에게 빼앗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격장에 위문을 가서 관측소에서 연대장과 담배 한 대 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탕!’ 하고 총소리가 났어요. 불길한 예감에 얼른 밑을
내려다보니 한 병사가 고꾸라져 있는데 겁이 나서 아무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뛰어 내려가 그 아이를 뒤집어 보았더니 제대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천주교 신자 안드레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히 총성은 한 발이었는데
군복에 구멍이 두 개가 나 있었습니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총알은 회전을 하니까
나갈 때는 등 뒤의 구멍이 더 커야 하는데 뒤에는 구멍이 없고 앞에만 총알구멍이
두 개 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옷을 헤쳐 보니 군번줄에 묵주반지가 매달려 있었는데
총알에 맞아 반이 깨어진 묵주가 툉겨 나가면서 옷에 구멍이 하나 더 난 것
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M16 총은 바위도 뚫는데
묵주반지를 맞고 튕겨나갈 수는 없는 거지요. 튕겨진 묵주반지 반이 살에 박혔지만
그건 상처라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 상처로 기절을 했던 겁니다.
이 모습을 거기에 모인 1개 대대가 다 보았고, 그 후 군종 역사상 깨어지지 않는
기록이 하나 생겼지요. 그 사건을 보았던 1개 대대 전체가 교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4개월 후, 1개 대대를 연병장에 다 모아놓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를 줄 때
본당에서처럼 하나하나 머리를 숙이고 성수를 뿌릴 수가 없어서 성수채로 성수를
뿌리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명은 너희가 각자 대어라!’라고
했습니다. 그날, 돼지 두 마리를 잡고, 막걸리로 축배를 들며 대대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식이 끝나고 위병소를 나오는데 어떤 아이가 제 차를 가로
막았습니다. “왜? 너 술 취했어?” “신부님 암만 생각해도 제 옷에는 성수가 한
방울도 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례 받은 것 같지 습니다.” 저는 위병소에서
큰 주전자에 물을 떠오라 해서 그 자리에서 축성하여 머리에 한 통을 다
들어부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베푸나이다.”
그 아이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지금 서울교구 신부로 살고 있습니다.
6개월 후에 그 사건을 같이 보았던 연대장이 저에게 왔습니다.
“우리 어머니 설득하는데 6개월이 걸렸어요. 가족회의 끝에 다 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6개월 전에 저는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부처님보다 성모님이 훨씬
힘이 쎄다는 것을...... 우리 가족, 친척이 40명 정도인데 각자의 본당에서 교리를
받겠지만 세례는 신부님께서 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그 연대장의 식구와
친척 42명이 한 날 동시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4성 장군까지 올라갔고,
늘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전역 후, 여러 곳에서의 사장자리도 마다하고 신학원을
나와서 지금은 어느 시골 본당의 공소회장으로 지내고 계시고, 가족 중에 수녀
두 분, 손주 가운데 부산교구 신학생이 한 명 나왔습니다. 그때 묵주반지가 살려 준
군종병 안드레아는 서울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했습니다. 7년 뒤에 그에게서 편지가 한 장왔는데 ‘신부님, 저 기억하십니까?
성모님이 살려준 안드레아입니다.
이곳은 트라피스트 봉쇄수도원입니다.’ 수도원에 들어간 거예요. 제가 아일랜드에
있는 그 수도원에 한번 들렀더니 거기 원장수사님이 그 수사님을 보고 한국에서 온
예수님이라고 하더군요. ‘지가 죽다 살아온 놈인데 열심히 안 살면 어떡해~ ^^’
묵주기도가 사제를 만들고, 트라피스트 수도자를 만들고, 장군을 회개시켜 수녀가
둘이 나오고, 신학생도 나온 이것이 묵주기도의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묵주기도를 얼마나 좋아하셨던지, 주변사람들로 부터 ‘살아있는 묵주’라고
불리웠습니다. 살아생전 신부님은 언제나 묵주를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늘 묵주 기도 바치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 앞에 공적으로 드러냄으로서 묵주 기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저와 싸우는
악령의 힘은 엄청납니다. 이 전투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바로 묵주 기도입니다.
” 성모님을 얼마나 사랑하셨던지 ‘성모님의 교황’이란 애칭까지 얻으셨던 요한 23세
교황님은 묵주 기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통해, 성모님을 향한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묵주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묵주 기도는 기도의 최고 수단입니다.
묵주 기도는 주님의 육화와 구원의 드라마를 우리 마음에 제공합니다. 저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이신 동정녀 성모 마리아에게 매일 저녁마다 묵주 기도를
바칠 것을 약속했고 평생토록 실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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