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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부 >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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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1동 성당입니다.

어떤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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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11회 작성일 20-05-23 22:10
                          
결혼 5년차 남자입니다.
 
언제부턴가 아내가 이혼이야길 끄집어내곤 했습니다.
 
째려보며 무시했지만 한번은 회사일로 지쳐있던 때라
 
맞받아쳤습니다.
 
그날 이후 각방 쓰고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화가 사라지자 하찮은 일에도 마음이 틀어지고
 
미운감정이 돋아났습니다.
 
이렇게 헤어지는가?
 
생각도 못했던 이혼이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들도 눈치 챘는지 툭하면 울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아내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파국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정쩡한 몇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퇴근길에 과일 파는 할머니가 마지막 남은 거라며
 
귤을 사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시골 할머니 생각에 몽땅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곤 주방 탁자에 올려놓고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씻고 나왔는데 아내는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몇 개를 먹더니 ‘귤이 참 맛있네.’ 하곤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결혼 후 한 번도 귤을 사온 적이 없었습니다.
 
애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아내가 있는 방을 쳐다보며 서 있었습니다.
 
연애할 때 아내는 과일 파는 곳을 지나면 꼭 귤을 샀습니다.
 
핸드백에 넣고는 하나씩 까먹었습니다.
 
가끔은 제 입에도 넣어주곤 했습니다.
 
그 시절이 떠오르자 울컥해졌습니다.
 
방으로 돌아오니 코끝이 찡하고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5년 동안 몇 천원이면 살 수 있는 귤을
 
한 번도 사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결혼 후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 미안해졌습니다.
 
며칠 후, 늦은 퇴근길에 과일 파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또 샀습니다. 오면서 하나를 까먹어 봤습니다.
 
아내 말처럼 정말 맛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주방 탁자에 올려놓고
 
욕실에서 나오는데 아내가 앉아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어디서 귤을 샀냐고 물었습니다.
 
묻지 않으면 절대로 입 열지 않던 아내가
 
먼저 말을 건넨 겁니다.
 
‘지하철 입구에서 샀어.’
 
‘귤이 참 맛있네.’
 
처음으로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더니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 입에도 몇 알을 넣어줬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따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내는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이가 나빠진 이후론 아침을 해준 적이 없는 아내였습니다.
 
슬그머니 그냥 가려는데 아내가 잡았습니다.

한 술만 뜨고 가라 했습니다.
 
마지못해 첫 술을 뜨는데 목이 메었습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아내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하찮은 것에 상처받고
 
그 보다 더 하찮은 것에도 감동받는 아내를 생각했습니다.
 
그 뒤에도 가끔은 다투지만 이젠 걱정하지 않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를 연결해주는
 
‘또 다른 귤’이 많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로 감염된 듯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99%를 넘고 깨끗한 공기가 90% 이상이건만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열에 약합니다.
 
 
 
 
 
뜨거운 삶
 
 
–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눈길
 
 
– 다시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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